생물학) 통섭
Book/Science
2008/05/12 02:47
도킨스를 거쳐 에드워드 윌슨까지 왔다.
에드워드 윌슨은 사회생물학 논쟁에 다시 불을 지핀 인물이며, 과학적 방법론을 심리학이나 사회학, 심지어 인문학까지 확장시키고 싶어 하는 뼈 속까지 과학자이다.
'통섭'은 그의 야망을 적은 책이며 결론적으로 얘기하면 나도 그의 야망에 흥미가 있다. 다만, 그의 주장이 실현되기 어려운 점을 제기하고 싶다.
그에 대한 나의 반론은 두 가지이다.
첫 번째는 불가지론이다. 철학에서 얘기하는 불가지론과 비슷한 논지이다. 그가 통합 이론으로 가는 길에서 가장 핵심적인 연구로 제시하고 있는 인간 사고의 작동원리, '왜'와 '어떻게'의 영역이 밝혀졌다고 가정을 하자. 그런데 그 연구의 결과가 연구 대상의 자체의 특성이 불확정적임을 내포하는 것이라면? 마치 운동의 전망에 대한 하이젠베르크의 확률적 전망처럼. 그의 야망이 선거 결과 예측이 아니라면 이런 결과는 상당히 실망스러울 것이라 예측할 수 있다.
두 번째는 불확정적이 아니라 확정적이더라도 발생할 수 있는 것이다. 그가 책에서 비판하고 있는 낭만주의, 포스트모더니즘과 같은 정서나 감상들. 과연 인간 사고의 작동원리가 밝혀져도 존재할 지도 모르는 것들의 제거는 어떤 방식으로 작동하는 것일까? 확정적인 원리가 밝혀지면 이런 비과학적인 유물들은 사라질까? 과학적이 아니면서 받아들여지는 것의 생존 원리를 밝히는 또 다른 작업이 진행되어야 하나? 그 원리가 밝혀지면 사라질까? 물론 윌슨이 그런 부분들의 제거에 대해 언급한 것은 아니지만, 그런 논조로 비판하고 있다고 읽혀졌다.
통섭은 매우 흥미롭고 지루한 책이다. 나는 과학도도 아니며, 물론 과학도도 그의 책의 모든 부분이 흥미로울 수는 없다. 많은 전문용어들이 포함되어 있으며 개별 연구에 갇혀 있는 과학의 경향을 봤을 때 과학도들도 편하게 읽은 책은 아니다. 하지만, 그가 제시하는 질문들은 매우 흥미로우며 비판적 수용이 가능한 부분이다.
에드워드 윌슨은 과학이라는 방법론으로 모든 지식을 통합할 수 있으리라는 야망을 드러내며, 과학도들에게 외치고 있다.
"모두 과학의 최전선으로 나아가 현상을 구제하라!"
Ps. 가끔 그런 비판을 본다. 과학주의기 때문에. 내 생각에는 단지 과학주의이기 때문에 비판 받을 이유는 전현 없는 것 같다. 그것이 비판 받을 위해서는 그것의 논리가 취약할 때이다. 그래서 그런 글을 볼 때 짜증이 난다. 약해도 좋으니 제발 이해할 수 있는 주장을 펼쳤으면 한다. 과학주의이기 때문에 비판한다는 것은 너무 의미 축약이 아닌가?
간략한 목차
1장 이오니아의 마법
2장 학문의 거대한 가지들
3장 계몽사상
4장 자연과학
5장 아리아드네의 실타래
6장 마음
7장 유전자에서 문화까지
8장 인간 본성의 적응도
9장 사회과학
10장 예술과 그 해석
11장 윤리와 종교
12장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에드워드 윌슨은 사회생물학 논쟁에 다시 불을 지핀 인물이며, 과학적 방법론을 심리학이나 사회학, 심지어 인문학까지 확장시키고 싶어 하는 뼈 속까지 과학자이다.
'통섭'은 그의 야망을 적은 책이며 결론적으로 얘기하면 나도 그의 야망에 흥미가 있다. 다만, 그의 주장이 실현되기 어려운 점을 제기하고 싶다.
그에 대한 나의 반론은 두 가지이다.
첫 번째는 불가지론이다. 철학에서 얘기하는 불가지론과 비슷한 논지이다. 그가 통합 이론으로 가는 길에서 가장 핵심적인 연구로 제시하고 있는 인간 사고의 작동원리, '왜'와 '어떻게'의 영역이 밝혀졌다고 가정을 하자. 그런데 그 연구의 결과가 연구 대상의 자체의 특성이 불확정적임을 내포하는 것이라면? 마치 운동의 전망에 대한 하이젠베르크의 확률적 전망처럼. 그의 야망이 선거 결과 예측이 아니라면 이런 결과는 상당히 실망스러울 것이라 예측할 수 있다.
두 번째는 불확정적이 아니라 확정적이더라도 발생할 수 있는 것이다. 그가 책에서 비판하고 있는 낭만주의, 포스트모더니즘과 같은 정서나 감상들. 과연 인간 사고의 작동원리가 밝혀져도 존재할 지도 모르는 것들의 제거는 어떤 방식으로 작동하는 것일까? 확정적인 원리가 밝혀지면 이런 비과학적인 유물들은 사라질까? 과학적이 아니면서 받아들여지는 것의 생존 원리를 밝히는 또 다른 작업이 진행되어야 하나? 그 원리가 밝혀지면 사라질까? 물론 윌슨이 그런 부분들의 제거에 대해 언급한 것은 아니지만, 그런 논조로 비판하고 있다고 읽혀졌다.
통섭은 매우 흥미롭고 지루한 책이다. 나는 과학도도 아니며, 물론 과학도도 그의 책의 모든 부분이 흥미로울 수는 없다. 많은 전문용어들이 포함되어 있으며 개별 연구에 갇혀 있는 과학의 경향을 봤을 때 과학도들도 편하게 읽은 책은 아니다. 하지만, 그가 제시하는 질문들은 매우 흥미로우며 비판적 수용이 가능한 부분이다.
에드워드 윌슨은 과학이라는 방법론으로 모든 지식을 통합할 수 있으리라는 야망을 드러내며, 과학도들에게 외치고 있다.
"모두 과학의 최전선으로 나아가 현상을 구제하라!"
Ps. 가끔 그런 비판을 본다. 과학주의기 때문에. 내 생각에는 단지 과학주의이기 때문에 비판 받을 이유는 전현 없는 것 같다. 그것이 비판 받을 위해서는 그것의 논리가 취약할 때이다. 그래서 그런 글을 볼 때 짜증이 난다. 약해도 좋으니 제발 이해할 수 있는 주장을 펼쳤으면 한다. 과학주의이기 때문에 비판한다는 것은 너무 의미 축약이 아닌가?
간략한 목차
1장 이오니아의 마법
2장 학문의 거대한 가지들
3장 계몽사상
4장 자연과학
5장 아리아드네의 실타래
6장 마음
7장 유전자에서 문화까지
8장 인간 본성의 적응도
9장 사회과학
10장 예술과 그 해석
11장 윤리와 종교
12장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