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간지) 창작과 비평 139, 140
Book/Humanities
2008/06/16 00:59
고등학교 졸업 이후, 처음으로 창작과 비평을 샀다. 샀다기 보다는 받았다. 저번 봄에 벌써 2년 구독을 신청했다. ㅠㅠ
사실 창비를 2년 보고 싶다기 보다는 아르놀트 하우저의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 전집을 갖고 싶어서 신청했다.
나의 이런 경향은 강하다. 어제도 SF 월간지 '판타스틱' 2년 구독을 신청했다. 물론 과월호 전집과 듀나의 '용의이'를 갖고 싶어서 신청했다. 백수 주제에... ㅠㅠ
어쨌든 139호와 140호를 집어 들었다.
139호의 특집인 한반도에서의 근대와 탈근대라는 당분간 계속 될 예정이고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 뻔한 주제는 무시했고 박민규의 작품부터 읽었다. 제목은 한자 자판에 없는 글자였다. 龍 곱하기 4라고 적어야겠다. 물론 박민규의 작품은 보증수표의 자격이 있었다. 무협이라는 옷을 입힌 그의 작품은 읽는 내내 나를 웃게 했고 끝에는 이렇게도 옷을 입힐 수 있구나 하고 무릎을 치게 했다. 그리고 이 사람은 나와 유전자가 다르구나 하는 질투도 느끼게 했다. 이 작품은 140호의 특집과 연관되는 작품이었다.
140호는 장르문학과 한국문학이라는 특집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었다. 5명의 비평가들이 장르문학이 스멀스멀 침투해오는 주류문학에 대해 논하고 있다. 제목은 장르문학과 한국문학인데 그들은 태생이 주류문학이라 그런지 글의 밑바탕에는 어떤 위기감이 스며 있었다. 그런 위기감을 결국 주류문학이 팔을 벌려 장르문학을 안아야 하며 이미 많은 젊은 작가들이 그 사랑을 실천하고 있다고 승화시키고 있다.
모든 비평들은 지리한 장르론으로 도입되고 있으며, 굳이 사용하지 않아도 될 단어로 이미 재탕 삼탕된 복거일과 듀나, 박민규의 작품들에 대해 논하고 있었다. 걱정말라고 한 마디 하고 싶다. 아직까지 주류 문학 비평가들이 논해야 할 작품들은 산더미처럼 싸여 있다.
창비 140호의 특집과 관련된 다른 글들은 다음에서 읽을 수 있다.
- 문학과 사회(2004, 가을호), 문예중앙(2007, 겨울호), 작가세계(2008, 봄호), 문학동네(2007, 여름호)
사실 창비를 2년 보고 싶다기 보다는 아르놀트 하우저의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 전집을 갖고 싶어서 신청했다.
나의 이런 경향은 강하다. 어제도 SF 월간지 '판타스틱' 2년 구독을 신청했다. 물론 과월호 전집과 듀나의 '용의이'를 갖고 싶어서 신청했다. 백수 주제에... ㅠㅠ
어쨌든 139호와 140호를 집어 들었다.
139호의 특집인 한반도에서의 근대와 탈근대라는 당분간 계속 될 예정이고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 뻔한 주제는 무시했고 박민규의 작품부터 읽었다. 제목은 한자 자판에 없는 글자였다. 龍 곱하기 4라고 적어야겠다. 물론 박민규의 작품은 보증수표의 자격이 있었다. 무협이라는 옷을 입힌 그의 작품은 읽는 내내 나를 웃게 했고 끝에는 이렇게도 옷을 입힐 수 있구나 하고 무릎을 치게 했다. 그리고 이 사람은 나와 유전자가 다르구나 하는 질투도 느끼게 했다. 이 작품은 140호의 특집과 연관되는 작품이었다.
140호는 장르문학과 한국문학이라는 특집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었다. 5명의 비평가들이 장르문학이 스멀스멀 침투해오는 주류문학에 대해 논하고 있다. 제목은 장르문학과 한국문학인데 그들은 태생이 주류문학이라 그런지 글의 밑바탕에는 어떤 위기감이 스며 있었다. 그런 위기감을 결국 주류문학이 팔을 벌려 장르문학을 안아야 하며 이미 많은 젊은 작가들이 그 사랑을 실천하고 있다고 승화시키고 있다.
모든 비평들은 지리한 장르론으로 도입되고 있으며, 굳이 사용하지 않아도 될 단어로 이미 재탕 삼탕된 복거일과 듀나, 박민규의 작품들에 대해 논하고 있었다. 걱정말라고 한 마디 하고 싶다. 아직까지 주류 문학 비평가들이 논해야 할 작품들은 산더미처럼 싸여 있다.
창비 140호의 특집과 관련된 다른 글들은 다음에서 읽을 수 있다.
- 문학과 사회(2004, 가을호), 문예중앙(2007, 겨울호), 작가세계(2008, 봄호), 문학동네(2007, 여름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