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용자 삽입 이미지
 졸업을 하니 책을 빌려 읽을 수가 없었다. 앉아서 읽고 오리라는 획기적인 계획을 세우고 중앙도서관으로 올라갔다. 하지만, 기말고사 기간이었다. 알고는 있었지만 자리가 전혀 없을 지는 몰랐다.
책 한 권 혹은 가방만 덜렁 앉아 있는 공간들은 나를 무척 불쾌하게 했다. 결국 도서관 밖으로 나가지도 못하고 간이 의자에 앉아 박민규의 책을 들었다.

 아마 박민규의 책이 아니었다면 나는 간이의자의 협소함을 탓하며 도서관을 나왔을 지도 모르겠다. 그만큼 지구영웅전설은 재미가 있었다. 세계 권력 질서와 아메리칸 만화의 절묘한 짬뽕은 그의 탁월한 글쓰기 전략과 재능을 드러내고도 웹페이지 반만큼이나 남았다. 하지만 아쉬움도 있었다. 그것은 문학이 줄 수 있는 것이 조금 빠져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리얼리즘이든 포스트모더니즘이든 어떤 양식적 차이가 줄 수 있는 맛과는 다른 것이다. 살아간다는(단지 생활한다는 의미 이상의 것) 것에 대한 글쓴이의 감정을 거의 느낄 수가 없었다. 형식적인 파괴가 유도한 특이한 경험은 분명 그가 전략적으로 의도한 바이지만 그런 경험의 끝에는 무엇이 남을까.

 문학은 사회과학서적과는 다른 것이다. 이런 규정은 장르적인 것에 대한 소비자의 희망 사항과 관련이 있다. 내가 문학이 주는 즐거움을 갖기 위해 시간을 소비했다면 그런 꼬리표를 달고 나온 것들은 그것을 채워줄 의무가 있다고 생각을 한다. 나는 지구영웅전설이 그런 의무를 다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물론 저자가 그런 의무를 부정한다면 할 말은 없다. 다만, 그런 의무를 부정하고 싶다면 다른 꼬리표를 달고 글을 썼으면 한다. 그래도 니가 좋기는 하다. 헤.
blog comments powered by Disqus